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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4-06 조회수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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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나 NGO칼럼1704

아낌없이 주는 나무

“너에게 더 줄게 있으면 좋겠는데..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늙어 버린 나무 밑동밖에 안 남았어.. 미안해.”

옛날 나무 한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나무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며, 매달려 놀기도 하고 그네처럼 타기도 했습니다. 나무는 소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열매를 맺은 나무는 소년에게 과실을 주어서 먹게 하기도 하고 요리조리 숨는 소년을 찾으며 숨박꼭질도 했습니다. 소년이 피곤해지면 그늘을 주어 쉬게 했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도록 열매를 내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은 집을 짓기 위해 나무의 가지를 베었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위해 나뭇가지도 내어준 나무는 행복해 했습니다. 또 많은 세월이 흘러 나무 앞에 나타난 소년은 어느덧 어른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멀리 떠나기 위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었고 그 배를 타고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백발의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의 지친 몸이 나무 앞에 나타났을 때,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밑동밖에 남지 않은 몸뚱이를 많이 지쳐 보이는 백발의 소년을 위해 내어 놉니다. 소년은 나무의 밑동에 앉아 지친 몸을 나무에 맡기며 휴식을 취합니다. 나무는 행복합니다.
이 이야기는 1964년 발표된 쉘실버스타인(1932~1999)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입니다. 발표가 된지 5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사랑받으며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는 이야기입니다. 미국교사 선정 100대 도서 중 3위에 오를 정도로 차가워지는 이 시대에 사랑과 희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던져주는 명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촌에 많은 NGO단체들이 있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만들어지고 또 많은 나라에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만들어지게 되고 활약하게 되는 근원은 바로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NGO단체가 지구촌에 인류애를 구현하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허황된 이야기이며 꿈같은 소리다. 할 수 없다“라는 이야기와 함께 NGO의 인류애를 위한 노력은 시작되었습니다. 치열한 국제 경쟁적 환경 속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목적, 그 어느 한 나라가 할 수 없는 일, 어려워 보였던 지구촌을 향한 사랑의 전파는 꺼지지 않는 놀라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지구촌을 향한 사랑의 전진만이 NGO의 생명력이 됩니다. 바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희생하였던 그 우직스러운 마음처럼 말입니다. 지금 NGO는 많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그동안의 여러 상황을 통해 보니 무조건 주는 것만이 사랑의 정답은 아니다“라고 결론을 짓기도 하고 ”그래도 끊임없이 주어야 하는 것이 사랑이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NGO의 효율과 효과에 대해 수 많은 연구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NGO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이때에 한 소년을 향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사랑과 희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나무의 사랑은 효율적이거나 효과적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나무는 어떤 효과를 바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존재 그리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의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소년에게 주었던 모든 것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들은 소년에게는 없는 것이며 소년을 통해 생겨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무의 그 모든 주기만한 희생은 소년의 세월을 살아가게 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나무는 어떤 것도 바라고 있지 않았을까요? 주기만 했다는 말의 뉘앙스가 나무를 희생적으로만 만든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은 ‘나무는 그저 행복할 뿐 이었습니다’라는 말로 마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을 바라고 있었다라고 하기 보다는 나무가 보여준 희생적 사랑은 나무에게 넘치는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존재의 이유를 한껏 발휘할 수 있었고 자신에게 있는 것들의 정확히 이유를 찾아내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이유를 느끼며 세월을 보낸 나무. 그래서 나무는 그저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지만 제목에서 비춰지는 슬픔을 거두어보면 가장 행복한 나무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NGO가 무조건 퍼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의 세월을 악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민은 그들이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에 고정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게 주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고민의 처음과 끝이 사랑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나는 과연 어떤 존재로 이 세상에 있는지 잠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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