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의 걸쳐 A국 출신의 난민 여성 스토리를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2021년 6월, 후원자로부터 한 여성과 아기를 위한 후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이름은 글로리아(가명). A국 출신 여성으로, 난민 신청이 불허된 상태에서 홀로 아기를 출산한 후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생후 몇 개월이 안 된 어린 아들을 두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 만큼, 큰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고, 지금도 그 걸음이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A국에서 글로리아는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던 평범한 여성이었습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서 일하던, 능력 있는 여성이었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업군인이었던 남편이 장기 집권 중인 독재정권을 전복하는 군사쿠데타 모의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갑자기 체포된 후부터 그녀의 인생은 180도 다른 인생이 되었습니다. 체포된 남편은 이후 연락이 끊겼고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남편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어 군정보국을 찾아간 글로리아는 자신마저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끌려가 불법 구금을 당했고, 시간의 흐름조차 가늠할 수 없는 어두운 지하 감옥에 갇혀, 심한 고문을 받아야 했습니다. 군경찰은 원하는 정보를 얻고자 갖은 고문을 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자 성적유린까지 서슴치 않았고, 그 과정에서 글로리아는 HIV에 감염되는 안타까운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남편 지인으로 추정되는 내부자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탈출하게 되었지만, 자신과 가족의 생명이 계속 위협받는 상태에서 숨어 지내다가 결국 삼촌이 권하는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교육부에 근무하던 오빠는 강제 해고당했고, 탈출을 도운 삼촌은 독살로 갑자기 사망했습니다. 여러 불이익과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가족과 자국의 커뮤니티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으며, 두고 온 아들의 소식조차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글로리아는 곧 난민 신청을 했으나 A국에서의 정치적 박해와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증명해줄 증거를 구하기 어려워 난민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과정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비록 홀로 버티기도 힘은 상황이었지만, 아이를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출산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하루 한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출산 후 계속되는 하혈로 계속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건강보험자격 상실로 이미 지불된 치료비의 공단지원금 환수 통보까지 받게 되어 약 1,300만원이 넘는 환수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프렌즈와 만나게 되었고, 이후부터 프렌즈의 긴급 지원을 받으며, 난민들을 위한 전문 기관인 피난처와 공익법센터 어필의 협력 속에 재심 청구를 했고, 2심에는 안타
깝게도 패소했으나, 현재 항소하여 3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글로리아는 난민 인정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0.4%(유엔난민기구, 2020년)에 불과하며 27년간 한국이 인정한 난민 숫자는 1,119명입니다. 전 세계 난민의 약 3분의 1을 수용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난민 인정률 32%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입니다. 난민지원에 많은 세금이 투입된다는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2019년 기준, 생계비 지원을 받은 난민신청자는 609명으로, 전체 난민신청자 1만 5,452명의 4%에 불과했습니다.
※ 다음 호에 내용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