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호에 나눴던 A국 출신의 난민 여성 글로리아(가명) 이야기를 좀 더 이어가려고 합니다.
본인이 원해서 스스로 난민이 되기를 선택한 사람이 있을까요? 본인과 가족에 대한 생명의 위협이 없다면, 글로리아는 누구보다 가장 먼저 고국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있고, 평범했던 삶이 있고, 좋아하던 음식과 모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그곳으로 말입니다. 끝없이 참담한 기억을 떠올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그녀 또한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가고 싶어도 아직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때까지 자신과 자신을 믿고 이 세상에 찾아온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비록 그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일지라도 말입니다.
현재의 글로리아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난민신청자? 난민불인정자? 아니면 난민? 난민은 한 정부로부터 난민으로서 인정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난민이 된 그 순간부터 이미 난민으로서 존재합니다. 어떤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다음 절차일 뿐입니다.
법적 보호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리아 역시 다른 많은 난민들처럼 언어적 한계와 관련 정보 부족, 증명하기 어려운 특수 상황에 대한 증거 부족으로 난민 인정이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긴 시간을 더 버텨야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미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힘든 기억을 떠올려가며 어떻게든 그것을 증명할 방법을 찾고자 애쓰고 있는 글로리아의 시간은 아직 과거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한 때, 나라를 잃고 어디선가 난민으로 살아야 했던 우리가 이제는 전 세계 난민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싶어 찾아오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삶, 복잡하고 불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가 마주하는 다른 이들의 고통과 아픔 앞에 겸허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 역시 동일한 아픔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정우성 씨는 그의 저서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 난민 어린이들이 어떠한 가능성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에게 미래의 삶을 위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비단 이들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 아이가 우리 인류에게 어떠한 선물을 선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확신한다.”

글로리아와 그 품에 잠든 아기에게, 그리고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또 다른 우리를 위해 축복의 인사와 응원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제부터 올 시간은 글로리아와 아기에게 부디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